세계 최초 4대 종교 ‘만남중창단’, 노래로 종교의 벽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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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지난 9일, 서울 흑석동 원불교 한강교당 선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안을 둘러보니 네 명의 성직자가 저마다 다른 음색으로 가수 양희은의 '상록수'를 부르고 있었다. "이 부분은 좀 더 속도를 내면 어떨까요?" "여기선 음을 살짝 올려주세요." 곡 해석을 두고 주고받는 대화 속에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4대 종교 성직자들로 구성된 만남중창단. 김진 목사, 하성용 신부, 성진 승려, 박세웅 교무가 그 주인공이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인연을 맺은 네 사람은 2022년 성진 승려의 제안으로 의기투합해 중창단을 결성했다.
"음악은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요소잖아요. 노래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김진 목사는 만남중창단 결성 배경을 이같이 설명했다.
만남중창단의 주요 레퍼토리는 '아름다운 세상', '걱정말아요 그대', '나는 문제없어', '도망가자' 등 대중에게 친숙한 곡들이다.
박세웅 교무는 "대중가요는 누구나 잘 알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 라며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종교인과 비종교인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만남중창단으로 활동한 지도 어느덧 3년. 그동안 무대에 오른 횟수만 200회를 훌쩍 넘는다. 공연을 보고 종교에 관심이 생겼다는 사람부터, 종교는 없지만 활동을 응원한다는 이들까지, 만남중창단의 팬층은 날로 두터워지고 있다. 이들이 종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뭘까.
"사실 저희는 노래를 정말 못합니다. 너무 잘 부르면 만남중창단의 매력이 사라진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하성용 신부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매번 용감하게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껴요. 아마 많은 분들이 이런 모습을 보며 공감하고 용기를 얻는 게 아닐까요."
서로 다른 종교인으로서 함께 활동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묻자, 하 신부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기 때문에 갈등은 거의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만남중창단의 활동이 '서로 다르면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선입견을 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박 교무는 "만남중창단 활동을 하면서 어깨의 짐이 한결 가벼워졌다"며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각 종교가 힘을 모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로 꼽은 것은 지난해 5월, 우즈베키스탄 타슈겐트 아리랑 요양원에서 연 공연이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 이주 당한 고려인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지만, 처음에는 반응이 미지근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고향의 봄'을 부르자 객석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어르신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하나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어요. 모국어를 거의 잊었지만 '고향'이라는 단어에 본능적으로 반응한 거죠. 그때의 벅찬 감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요. 마치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가족과 재회한 느낌이었죠." 성진 승려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지난해 8월, 유엔 처치 센터 공연을 위해 방문한 미국 뉴욕에서의 거리 공연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예전 무역센터가 있던 자리에 지어진 그라운드 제로 지하 쇼핑몰에서 'You Raise Me Up'을 불렀어요. 그때 한 분이 다가오시더니 저희 노래가 자신의 마음을 울렸다며, 오늘 정말 행복한 날이라고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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